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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누가 더 행복할까? by위기철/피아노와 아르바이트

노마드나짱 2022. 2. 27. 11:59




누가 더 행복할까? / by위기철

 

 

너는 참 좋겠다.

엄마가 비싼 옷만 입히니
친구들한테 뽐낼 수 있고,

집에 피아노가 있으니
피아노도 멋지게 잘 치겠구나.

용돈도 많이 받으니
실컷 군것질하고,

집에 자가용이 있으니
주말마다 차 타고 놀러 가겠구나.



너는 참 좋겠다.

엄마가 비싼 옷을 안 입히니
모래 장난도 실컷 할 수 있고

집에 피아노가 없으니
피아노 연습도 안 하겠구나.

군것질할 용돈을 안 주니
이 썩을 염려도 없고,

집에 자가용이 없으니
차 타고 놀러 가자 떼쓸 필요도 없겠구나.



 


 




형제는 많고 살림이 넉넉지 않았던 저는 2학기 등록금이라도 내 손으로 마련해보자는 마음으로 중2 여름방학 때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친척집에서 8월 한 달간을 했었는데, 친척집은 당시 수영복 만드는 일을 하셨어요. 저는 거기서 완성된 수영복의 하자를 체크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수영복이 상품화되기 전의 마지막 단계의 검수작업이라 꼼꼼하게 체크해서 불량의 제품을 찾아내야 했었지요.

친척집에는 저보다 한 살 어린 동생과 세 살 어린 동생 두 자매가 있었습니다. 제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8월 한 달 동안은 계속 두 자매의 얼굴을 보게 되었어요. 저희 집보다 사는 형편이 훨씬 좋았던 친척집은 두 자매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왔고 또 오랫동안 배워서 피아노도 굉장히 잘 쳤습니다. 각종 대회도 자주 나갔었고, 집에는 대회 수상 트로피도 많이 진열되어 있었어요. 아르바이트일을 하는 동안 두 자매의 피아노 치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피아노 연습을 몇 시간씩이나 하고는 또 피아노 학원 갔다 온다면서 예쁘게 원피스 차려입고 피아노 가방 들고 나가더라고요. 그러면서 정말 피아노 치는 거 너무 싫고 학원가는 것도 싫다고 엄마에게 매일같이 투정 부리면서 집을 나섭니다. 제겐 피아노 안 배워서 참 좋겠다는 말을 남기면서요.

저는 어릴때부터 피아노를 무척이나 배우고 싶었습니다. 학교 등록금도 근근이 내고 있는 집안 형편으로는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현실이었지요. 피아노를 안 배워서 참 좋겠다고 제게 남긴 친척 동생의 말은 행복에 겨운 정말 철없는 투정이라는 생각으로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 피아노를 원 없이 칠 수 있는 두 자매가 많이 부러웠고, 저도 피아노만 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했었으니까요.

시간이 이만큼 흘러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초5, 중1이었던 그 두 자매에게는 노는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쳐야 하는 피아노가 곤혹스럽고 행복을 앗아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행복은 남이 생각하는 그런 피상적인 판단과는 참 많이 다름을 느낍니다. 저도 성인이 되어 첫 직장에서 첫 월급받았을때 바로 피아노를 배워 어릴 때의 소원을 결국 풀게는 되었습니다.



누가 더 행복할까 / by 위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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